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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コリアン オモニの教室惜しまれ閉校 京都識字学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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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코리안

어머니 교실 아쉬운 폐교 교토-문맹퇴치 학교

 

많은 재일 한국인이 사는 교토시 미나미 구 東九条 지구에서 40 년간 계속 된 민간 문명퇴치학교 

'오모니학쿄'가 3 월말에 폐교한다. 재일 1 세를 중심으로 전성기에는 100 명 이상이 다녀, 세대를 넘어 배우는 장이 되었지만, 

고령화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학생 수가 몇 명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4 월 7 일에 졸업생 및 관계자 송별회를 열고 배움와의 추억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모니학쿄는 1978 년 재일 대한 기독교회 교토 남부 교회 (동구)에 "九条 오모니학"로 개설. 회사원이나 교사, 대학생 등이 교사 역을 맡아

매주 월요일 수업에는 재일 1 세의 한국인 여성이 몰려 들어 문화제도 열 정도였다.

교회의 이전에 따라 2003 년부터는 재일 코리안의 교류 거점 "東九条 시민 문고 마당 센터"에서 "어머니학교 개나리 '라고 이름을 바꿔 계속되었지만, 참가자는 줄어드는 반면이었다.

약 15 년 전부터 다니는 조 영일씨 (87) = 동구 = 6 자매의 장녀로 교토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전시 중에 아버지가 일하는 니켈 광산이있는 교토부 북부로 이사했지만 생활은 궁핍 진학도 할 수 없었다.

전후 육아에 쫓겨 필사적으로 일하고 일상 생활에 필요한 한자를 배울 여유조차 없었다.

오모니학쿄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희를 지나고 나서. "새로운 기억보다 잊는 것이 많지만 공부가 즐거워" 한자의 받아쓰기 등 숙제는 반드시 받아 갈 정도였다.

"선생님들에게 감사 수밖에 없다. 폐교가 아쉽긴하지만, 어쩔 수 없지" 라고 아쉬움을 남깁니다.

"1 명이라도 다니고 싶은 어머니가 있는한 계속 운영하고 싶었지만, 지난해 6 명에서 올해는 3 명 뿐 입니다."

 어머니 학교 개나리를 주재하고 오랜 관련되어 온 음악가의 朴実씨 (74) 가 예기합니다. 재일 1 세였던 박씨의 어머니 (고인)도 일찍이 배웠습니다.

손자 정도의 학생에서 문자를 배우고 연하장을 처음으로 직접 쓴 때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한다.

 "가르치는 쪽이었다 젊은이도 어머니의 모습에서 배우고 성장했다. 오모니학쿄의 역사는 東九条의 역사였다"고 회고했다.

이별의 모임은 4 월 7 일 오후 12시 반에서 東九条 시민 문고 마당 센터에서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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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コリアン

オモニの教室惜しまれ閉校 京都識字学校

 

多くの在日コリアンが住む京都市南区の東九条地区で40年間続いた民間の識字学校「オモニハッキョ」が、3月末で閉校する。在日1世を中心に最盛期には100人以上が通い、

世代を超えて学ぶ場となったが、

高齢化の影響もあり近年は生徒数も数人まで落ち込んでいた。4月7日に卒業生や関係者でお別れ会を開き、学びやとの思い出を語る。

 

 オモニハッキョは1978年、在日大韓基督教会京都南部教会(同区)に「九条オモニハッキョ」として開設。会社員や教員、大学生などが教師役を担い、

毎週月曜の授業には在日1世のコリアン女性が詰めかけ、文化祭も開くほどだった。教会の移転に伴い、2003年からは在日コリアンの交流拠点

「東九条市民文庫・マダンセンター」で「オモニハッキョケナリ」と名前を変えて続いたが、参加者は減る一方だった。

 

約15年前から通う趙※日(チョ・ヨンイル)さん(87)=同区=は6人姉妹の長女として京都で生まれた。

国民学校を卒業後、戦時中に父親が働くニッケル鉱山のある京都府北部に引っ越したが、生活は困窮し進学もできなかった。

戦後は子育てに追われて必死に働き、日常生活に必要な漢字を学ぶ余裕さえなかった。

 

 オモニハッキョに通い始めたのは古希を過ぎてから。「新しく覚えるより忘れる方が多いけれども、勉強が楽しくて」。

漢字の書き取りなど宿題は必ずもらって帰るほどだった。「先生たちには感謝しかない。閉校は寂しいけれども、しょうがないね」と惜しむ。

 

 「1人でも通いたいオモニがいる限り続けたかったが、昨年の6人から今年は3人。潮時と思った」。

オモニハッキョケナリを主宰し、長年関わってきた音楽家の朴実(パクシル)さん(74)=同区=が明かす。在日1世だった朴さんの母(故人)もかつて学んだ。

孫ほどの学生から文字を習い、年賀状を初めて自分で書いた時の表情が忘れられないという。「教える側だった若者も、オモニの姿から学び成長した。オモニハッキョの歴史は、東九条の歴史だった」と振り返った。

お別れの会は4月7日午後0時半から、東九条市民文庫・マダンセンターで。


毎日新聞記事より抜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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