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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의 조국사랑

도쿄관리자 0 10028 0 0

서울대 재외동포교육지원연구센터 자문위원장

이광형 교수님의 


재일동포의 조국사랑


1945년 8월, 해방 후 일본에서 거주하던 한국인은 대부분 한국으로 귀국했고, 귀국하지 못한 한국인은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것을 예상하고 자녀들에게 민족의 혼인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일본 전국에 500여 개 민족학교를 설립하여 5만여 명(1948년 4월 27일자 아사히신문)의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 문화를 지도했다.

 

일본 정부의 조선인학교(민족학교) 폐교령에 대항하여 1948년 4월에 오사카와 효고에서 조선인과 일부 일본인 7,000여 명이 참가해서 격렬하게 저항한 한신 교육투쟁으로 발전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정식학교 신청을 받기로 했으며, 일본 전국에서 신청한 16개 학교 중에서 한 곳만 일본 정부가 정식학교로 인가했다. 1946년 4월에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1세인 조규훈 선생이 설립한 오사카에 있는 백두학원 건국학교이다. 조규훈 선생의 건학이념은 백두학원 창립 취지문의 “조국부흥의 주춧돌이 되자”에서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주일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 5년, 동경한국종합교육원장 5년, 그리고 정년 퇴직 후 대학에 석좌교수로 강의하던 중 민족교육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신 김성대 이사장님의 강한 요구에 의해서 2014년 4월에 교장으로 부임하여 근무하면서 설립자 조규훈 선생의 조국에 대한 마음과 민족교육에 대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소개하는 것이 30여년간 재외동포교육을 담당했던 자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여 그 많은 조국 사랑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945년 해방이 되고 한·일국교가 성립되고 1949년 1월에 주일대한민국대표부가 설치되었다. 1948년 후반기에 미국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정한경 초대공사가 조규훈 선생에게 찾아와 한국 정부의 재정이 어렵다며 도움을 청하기를 대표부 설립에 필요한 자금 500만 엔만 있으면 최소한의 준비는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1,000만 엔을 지원하여 주일대표부는 세이코(SEIKO)시계 본사 건물로 유명한 도쿄 긴자의 핫토리 빌딩 4층을 통째로 빌려 썼고 대표부 관저를 구입 할 때도 300만 엔을 지원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조 선생의 4남인 조명현 씨는 그 당시 교사의 1개월 치 월급은 150엔이었고, 히로시마에서 부산까지 오는 연락선 왕복 뱃삯이 50엔으로, 1948년에 1,300만 엔은 지금 환산하면 20억 엔(200억 원)을 조국을 위해서 기부하면서 어머님이 그렇게 입고 싶어 하던 스커트를 사치스럽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던 아버지에게 항의했더니 “우리만 잘살아서 뭐하느냐, 모두가 좋아져야 한다”고 하셨다며, 그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신념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한, 조규훈 선생의 고향인 제주시 조천읍에 1950년 개교한 조천중학교가 있다. 조국 발전을 위한 길은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열악한 환경인 고향에 중학교를 건립하기 위해 일본에서 설계도를 작성하고 건축자재를 직접 수송하여 지금의 조천중학교를 건립하여 국가에 헌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일동포의 고국 사랑은 너무나 많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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