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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기다림, 불안 이겨내야 방목 성공 2

도쿄관리자 0 7406 0 0

어느 집이든 자녀 교육은 난제다. '아빠의 무관심은 아이를 잘 키우는 3대 요소 중 하나'라는 둥 아빠는 걸림돌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이소은 아빠'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수오서재 刊)라는 책을 펴낸 이규천씨는 "결정해야 할 때마다 '나를 위한 것인가, 아이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심을 잡아주었다"며 "더러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에게 통하는 주문을 외웠다"고 말했다.

 

'잊어버려!'… 실패도 결핍도 재산

 

그 주문은 '잊어버려(forget about it)'였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이소은이 힘들게 들어간 미국 로스쿨 첫 시험에서 꼴찌를 하고 펑펑 울 때 아빠는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잊어버려. 아빠는 너의 전부를 사랑하지 네가 잘할 때만 사랑하는 게 아니야.'

 

―상고 졸업하고 은행에서 일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셨네요.

 

"전쟁통에 태어나 농사일 거들며 초등학교에 다녔어요. 누굴 만나든 '재건합시다!' 구호를 외치던 시절이에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렵게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강원도 어느 사립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파면을 당했지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재단 비리를 지적하고 학내 민주화를 요구했더니 조직적으로 괴롭혔어요. 조용히 사표 내면 재취업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종용했지만 거부했지요. 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 하면 더 고통스러워서 가는 길도 있지 않습니까. 해직당하고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심신이 망가지고 생활고가 심했어요."

 

―'잊어버려'는 그 시절에 받은 상처가 아물면서 얻은 깨달음이군요.

 

"새롭고 생산적인 삶을 취하려고 잊는 겁니다. 냉장고 안에 든 오래된 음식을 버려야 새로 채울 수 있잖아요. 과거에 매이지 않아야 현재에 충실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요."

 

―현실과 타협하며 살진 않으신 것 같습니다만.

 

"어지간하면 양보하는데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선, 사회 정의는 지키려고 합니다. 고달팠지만 참 묘하게도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리더라고요. 뭉그적거릴 수 없어 미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예금증명서를 보내야 해 친구에게 2000만원을 빌렸지요. 서른여덟 살에 가족 데리고 학비가 가장 싼 웨스트버지니아대학으로 갔습니다."

 

―정치학 박사가 자녀 교육에 대한 책을 썼네요.

 

"연구서 쓸 때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두 딸이 어떻게 독립적이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물으면서 시작한 책입니다. 잘 키웠다는 이야기라서 재수 없게 비치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금수저라고 오해할까 봐 과거를 담았더니 부끄럽기도 하고요."

 

―딸들이 아빠를 닮았나요?

 

"큰딸은 저처럼 난관에 부딪힐 때 기죽지 않고 돌파하는 힘이 있어요. IMF 외환 위기 땐 음대 교수에게 '나중에 유명해지면 갚겠다'며 한 학기 생활비를 빌렸지요. 작은딸은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면 떠나요. 가수를 12년 했고 법조계에서 10년 보내더니 또 뭔가 다른 궁리하는 모양이에요."

 

―진로 결정을 언제나 딸들이 했다면서요.

 

"좋은지 싫은지 경험해본 다음에 스스로 판단하길 바랐어요. 사회도덕이라는 큰 울타리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틀도 강요하지 않았지요. 방목이지만 방종과는 다르죠. '공부하라' 소리도 안 했고 '그 길은 힘드니 가지 마라' 한 적도 없고요. 경제적 뒷받침은 못 해줬지만 덕분에 아이들이 자립했으니 결핍도 재산인 것 같습니다."

 

한국 대학은 '근친상간'이 문제?

 

남자는 아이가 태어나면 저절로 아빠가 된다. 그렇다고 다 아빠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낸 이씨는 "풍족하게 해주고 학원비도 댈 수 있어야 한다는 셈법으로 치면 나는 빵점이고 불량 아빠"라고 했다.

 

―이소은은 고교 2학년 때 토플 만점을 받았습니다. 따님들이 특별히 자기 주도적인 거 아닙니까.

 

"방목에도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에요. 큰딸은 시험지에 몰래 아빠 도장을 찍은 적이 있어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날 엄마가 말했지요. '소연아 엄마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엄마가 도장 찍어줄게. 네가 엄마 몫까지 다 했구나!'"

 

―작은딸은 장난치다 귀한 도자기를 깨뜨린 적이 있다고요?

 

"실수했을 때 '와, 새것을 살 기회가 생겼네'라며 축하했기에 망정이지 욕하고 야단을 쳤다면 부녀 관계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이소은(왼쪽)은 가수 김동률과 함께 부른 ‘기적’ ‘욕심쟁이’ 등으로 사랑받았다.

―여느 부모라면 혼을 냈을 텐데요.

 

"방목이 그래서 어려워요. 구도자에 가까운 노력을 부모에게 요구합니다. 좋은 대학 보내려거든 좋은 학원에 보내라고들 하잖아요. 아이를 믿고 기다리던 부모도 종종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런 불안에 맞설 용기 없이는 방목이 불가능해요."

 

―왜 대치동에 사나요? 학원가에서 흔들리지 않은 비결이라면.

 

"작은딸이 가수 활동 시작한 중학생 때 들어와 18해가 됐어요. 저는 무주택자입니다. 아는 사람 집이라 싸게 살았는데 이젠 지방으로 나가야죠. 저희 부부는 사교육에 관심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잘해서 서울대 갈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지방대 나와도 나중에 꽃을 피우잖아요. 미국에선 하버드대 졸업장의 가치를 딱 4년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요.

 

"그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어느 학교 나오고 뭘 이뤘는가보다는 지금 뭘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미국이야 그렇지만 한국에선 졸업장이 계속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문제죠. 명문대 졸업장을 평생 우려먹으려고 하잖아요. 서울대 교수진은 서울대 출신이 대부분일 겁니다(자교 출신이 3분의 2를 넘지 말도록 교육공무원임용령을 개정했지만 2017년 국정감사 결과 서울대는 여전히 자교 출신 교수가 81%에 이른다). 미국에선 그런 현상을 '근친상간'이라 불러요. 하버드대 교수진은 하버드 출신이 20%도 안 됩니다. 과거는 지우고 현재 능력을 중심으로 교수를 뽑으니 학문이 발전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명문대 졸업장이 가치를 잃을 날이 곧 닥칩니다."

 

―왜 그렇게 전망하나요.

 

"지식이 필요 없는 사회로 변하고 있잖아요. 변호사나 회계사는 머지않아 사라질 직업이 됐어요. 인공지능(AI)이 전문직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의사도 그렇게 될 테고요."

 

"믿고 기다릴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이소은은 처음에 영어를 못해 걱정을 안겼다. 자폐에 가까운 침묵이었다. 어느 날 한국말과 비슷한 영어 단어를 발견했다며 기뻐했단다. 결석생 이름을 교사가 부르면 아이들이 '없~음'이라고 답하는데 'absent'였다. 그렇게 말문이 트였다. 이규천씨는 "우리는 뭐든 빨리하는 민족이지만 교육은 기다림,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 중 한쪽이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아빠가 엄하면 엄마는 품는 식으로요? 저는 반대해요. 저희 부부는 아이가 시험을 망쳐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조차 안 했어요. 부모 자식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지 않는 게 중요해요. 우리 아이들이라고 왜 문제가 없었겠어요. 실수를 하고 살짝 엇나가더라도 부모가 믿어주면 돌아옵니다."

 

―딸들에게 손 편지를 많이 쓰셨는데.

 

"당장 전화해 야단치고 싶어도 참았어요. 감흥이 없으니까요. 감정이 가라앉을 때쯤 아빠 편지가 도착합니다. 지적은 전혀 안 하고 '네가 있어 아빠가 행복하다'고 쓰죠."

왼쪽부터 이소은, 어머니 최희향, 이소연, 아버지 이규천씨. / 이규천씨 제공

―소은씨가 '가수가 되겠다' '로스쿨 가겠다' 할 때 속마음은 어땠나요?

 

"가수는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어린 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했어요. 노래를 그만큼 좋아했으니까요. '그럼 아빠가 어떻게 도와줄까' 물었죠. 학교는 꼭 다녀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고요. 작은딸은 새로운 걸 두려워하면서도 늘 새로움을 갈망하며 살아요. 로스쿨 이야기를 꺼냈을 땐 내심 기뻤어요. 변호사라는 직업이 좋았던 건 아니고요. 감성은 발달하고 이성적인 게 모자란 아이인데 거기서 부족한 걸 채우면 삶이 풍요로워지겠구나 싶었죠."

 

―자식만큼 인생의 쓴맛·단맛을 동시에 보게 하는 존재도 없지요.

 

"애들은 실패하면 고통스러워하고 그 모습을 보는 부모가 더 아파요. 저희는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다스려요."

 

―속이 새까맣게 탔겠군요.

 

"아뇨. '잊어버려!'가 있잖아요(웃음). 실패도 성공도 빨리 잊어야 합니다. 제가 하도 여러 일을 겪다 보니 어지간하면 안 흔들려요."

 

―자식과 헝클어진 관계는 어떻게 회복하나요.

 

"아이가 먼저 변하기를 바라지 마세요. 맞춰주면 됩니다. 조수석에 앉히고 차를 몰아 한 방향으로 가면서 대화해도 좋아요. '아빠가 미안하다' 말해 보세요. '잊어버려'라는 주문은 결국 용서와 같다고 저는 생각해요."

 

―평범한 아빠도 적용할 수 있는 팁을 주신다면.

 

"아이를 믿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적어도 1년을 지속해야 하고요. 가슴이 썩어 문드러져도 견디세요. 조바심 내고 성과에 집착하면 아이가 잘못될 확률이 높아요."

 

―부모 수업에서 스승은 아이라고요?

 

"미국에 '아버지가 되는 길은 수염을 깎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어요. 수염은 매일 자라잖아요. 깎는 방법은 날마다 달라지지요. 아이가 가져 오는 문제도 매일 변해요. 부모는 애들 덕에 배우고 자랍니다."

 

그는 "아빠가 걸림돌이 아니라 받침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스승'이 등장했다. 딸 이소은이다. 해마다 이맘때 엄마·아빠 쓸쓸할까 봐 다녀간다고 했다. "아빠가 준 자유와 믿음에 부응하려고 알게 모르게 노력했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간 일상이 아빠가 다 참고 내려놓고 절제하고 기다린 나날이었다는 걸 책을 읽고야 알았지요." 딸과 아빠가 마주 보고 웃는다. 국화빵이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8/20181228013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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